박태유의 글씨로 내용은 어부사(漁父辭)이다.

이 글씨는 1684년 늦은 가을에 초원(草原)에서 쓰여진 것인데, 정쟁의 와중에서 외직으로 좌천된 박태유의 심경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말미에 ‘반남박씨태유(潘南朴氏泰維)’‘사안(士安)’이라 새겨진 인장이 보인다. 사안은 그의 자(字)다. 그는 1681년 알성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중앙직을 역임한 후 1683년에는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간관으로서의 직분에 충실했던 그는 송시열 등 노론들을 탄핵하다 도리어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에 좌천되는 불행을 겪었다.

이 글씨는 찰방으로 재직하는 동안 고산도 관할의 초원역(草原驛)에서 쓴 것이다.
박태유가 어부사를 쓴 것은 굴원(屈原)이 간신들의 모략에 빠져 추방되었던 것이나 자신이 직언으로 인해 좌천된 것이나 그 처지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박태유는 아우 태보(泰輔)와 함께 안진경체(顔眞卿體)를 유행시킨 명서가였다.
현재 서계종택에 소장된 필첩류의 대부분이 그가 성첩한 것이라는 점은 그가 문장과 글씨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