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5년 12월 24일 박세당이 장손 弼基(1681~1739)의 혼례시에 豊川任氏
집안에 보낸 납폐문서.

박필기는 任震英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문서상의 신부측 婚主는 임진영의 동생이다.
신랑측의 혼주가 박세당인 것은 그가 친조부인 점도 있지만 당시는 필기의 아버지 태유가 사망하고 없었다. 혼례문서는 극히 정중한 문자였으므로 문투나 양식이 매우 까다로웠다. 국가적으로 본다면 외교문서와 같아 상대방에게는 존칭을 쓰는 반면, 자신에게는 겸칭을 쓰고, 상대방을 지칭할 때는 항상 擡頭하였다. 혼주, 즉 발급자의 성명 위에는 반드시 本貫을, 성명 아래에는 '拜'자를 썼다. 관직의 유무나 고하를 막론하고 혼서에 관함을 쓰는 법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