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 박세당 선생이 처음 이곳에 정착한 후, 그의 종손들이 대대로 거주해온 가옥이다.
의정부시 장암동 197번지 소재.

서계 박세당은 이곳에 정착한 후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였는데, 산등성이는 ‘동강(東岡)’, 시내는 동계(東溪)라고 불렀다. 방위상 서울의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문헌에 따르면, 이 동계로부터 북쪽으로 8-9보 가면 서계가 사는 집이 있다고 하였다.
지금의 서계종택 자리가 바로 여기이다.

서계의 「자찬묘표(自撰墓表)」에 따르면, (박세당의 집은) 울타리는 없었지만 복숭아와 살구나무, 배나무와 밤나무에 둘러싸인 집이라고 하였다. 당시의 행적구역상으로는 양주목 둔야면(芚夜面) 장수원리(長壽院里)였다. 서계는 자신의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지 주변의 언덕을 ‘악구(樂丘)로 부르기도 하였다.

종택은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그리고 행랑채로 이루어진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 집 앞 어귀에 있는 고목인 은행나무와 그 옆의 개울을 따라 세워져 있는 정자, 강당(계당) 터 및 그 뒤의 묘택 일대는 조선후기 사대부 생활 공간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교육적, 문화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전쟁 기간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은 바깥사랑채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건물은 대부분 후대에 건물이 지어진 것이어서 원래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1999년 8월에 경기도 전통종가로 지정됐고, 이중 사랑채는 2000년 4월 17일에 도문화재자료 제93호로 지정됐다.